처음 DSLR을 구입하고, 부산에 홀로 내려간적이 있다. 과외를 마치고 영등포에서 부산으로 출발하는 무궁화호 막차를 탔다. 새벽에 도착하는 기차에도 불구하고, 열차 내 형광등을 계속 켜놓아 눈을 붙이기 힘들었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겨 도착한 부산역 앞에서 송정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일출을 찍었다.
그리고 매우 힘든 일정을 보내며 저녁, 군대 동기인 석창이와 갓 오픈한 민들레영토에서 밥을 먹고 잠시 눈도 붙이고 쉬다가 은규형의 픽업으로 다대포 쪽에 사는 이모댁으로 갔다.
부산은 바다도 많지만 산도 많다. 이모댁으로 가는 길에도 산을 몇개 넘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 어릴적 살던 철산동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규모가 매우 큰 동네를 발견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라 내려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나중에 다시 오면 찍겠노라 다짐했던 곳이었다.
이번 여행 마지막에 누리마루를 찍고 나와 출출함을 달래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던 중이었다. 먹으며 심심해서 트위터를 보고 있는데, 친구 관이가 또 부산에 왔다는 것이 아닌가! 시간은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통화를 해보니 부산에 있는 친구와 남포동에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나도 담양 근처에서 숙박하려던 계획을 바꿔 남포동 근처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자갈치시장이 있고, 매년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열리는 남포동은 번화가다. 자갈치시장 물가도 비싸다고 알려져있고, 주변도 마찬가지다. 그간 지출이 많았던 터라 찜질방에서 하룻밤 보내려던 나의 생각은 너무 안일한 오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산에는 해운데 쪽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찜질방이 많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바닷가에 사람이 많은 성수기도 아니니.. 몇군데 네비로 찍어보고 실망하던 나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찍어본 찜질방을 향해 가던 길에 4년전 스쳐지나가며 아쉬워하기만 했던 장소를 지나가게 된다. 그 시간이 무려 새벽 1시경.
일단 찜질방이 영업하는지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아파트 같은 건물 지하에 있는 찜질방으로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실망감과 피로가 몰려오는 좌절 가운데, 사진이라도 찍고 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차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 맨 뒤에 차를 세워두고, 누리마루에서 마린시티를 찍으며 분해했던 삼각대를 다시 조립했다.
부산의 날씨는 아직 단풍이 다 들지 않은 은행나무가 있을 정도로 따뜻했지만, 새벽시간 바닷바람과 계곡풍이 부는 감천2동의 날씨는 정말 가혹했다. 바람이 매우 사나웠으며, 그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와 나무에서 떨어지는 단풍소리가 한데 어울려 흡사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내는 듯 했다. 촬영도중 내내 뒤에서 누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바람에 실려 날라오는 먼지가 눈에 들어가 눈을 따갑게 했다. 그래도 이곳을 담아가겠다는 일념 하에, 광각렌즈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세로로 여러장을 담았다. 파노라마로 합성하는 것은 나중에 따뜻한 방에서 하면 된다고 미루면서.
집에와서 합쳐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진이다. 좀 더 좋은 포인트에서 가까운 건물들이 보이지 않고, 우측하단의 가로등도 나오지 않는, 주변이 어두운 장소에서 찍는다면 더 좋은 사진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그 새벽에 혼자 추위와 공포(?)에 부르르 떨며 찍은 사진이라 마음에 든다.